이슈야, Author at 디패스트 - 1027 중 848 번째 페이지
이슈야 (24645개 글)
-
-
-
-
-
중세 귀족은 어쩌다가 그렇게 됐을까, 그 기원을 찾아서
...게르만 왕국들은 로마 귀족 문화에도 영향을 주었다. 이는 새로 유입된 게르만 귀족들이 로마 귀족들과 문화적으로 크게 다르게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문화가 군사적 성격을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게르만 귀족들은 대부분의 측면에서 문화적으로 로마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차이는 그들이 어떤 일을 하느냐에 있었다. 로마 제국의 귀족들은 중앙 정부에서든, 고향 도시에서든 간에 대체로 비군사적인 민정 관직을 출세 루트로 여겼다. 그러나 이 경향은 이미 5세기 중엽의 아에티우스 시대부터 약화되고 있었다. 예를 들어, 갈리아의 저명한 원로원 가문 출신이자 아에티우스와 발렌티니아누스 3세 사후 황제가 된 에파르키우스 아비투스는 원래 아에티우스의 장군 중 한 명이었다. 그의 사위 시도니우스는 대체로 군인으로 묘사되곤 한다. 이들의 모습은 3~4세기 내내 제국의 민정/궁정 관직만을 지내던 원로원 귀족들의 모습과 크게 대비된다. 게르만 왕국 시대엔 세속적인 출세 경로가 점점 더 군사화 되었다. 이는 출세를 바라는 로마인들이 점차 간소화되어 가는 지방 행정으로 나아가지 않고, 왕의 군대나 궁정에 자리 잡게 만들었다. 마치 '야만인' 귀족들처럼 말이다. 시도니우스는 끝까지 로마 제국에 충성하고 고향 도시(클레르몽)를 위해 헌신했지만, 그의 아들 아폴리나리스는 부이예 전투에서 비시고트족을 위해 싸웠고, 아폴리나리스의 아들 아르카디우스는 프랑크의 왕 킬데베르트 1세의 궁정에서 활약했다. 서방에서 로마 귀족의 출세 문화가 가장 오랫동안 유지된 곳은 로마'시'였다. 이는 로마의 원로원 귀족층이 국가 행정에서 부분적으로 분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원로원 의원들도 군인이 될 수 있었다. 5세기 키프리아누스라는 로마 원로원 귀족은 군인 경력을 가졌으며 자신의 아들들을 군인으로 키웠고 심지어 그들에게 고트어로 말하게 시켰다. 이는 오스트로고트 왕국 궁정과 군대에서 경력을 쌓는 데 이점을 주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대부분의 로마 귀족층에서 발생했고 모든 세속 귀족들은 점차 군사 귀족으로 바뀌어갔다. 군대와 궁정이 싫다면 대안은 교회뿐이었다. 갈리아에선 5세기 중반부터 귀족들이 주교가 되었고, 이탈리아에서는 고트 전쟁 이후부터 일반적인 일이 되었다. 이는 당시 교회의 부가 점점 커졌음을 의미한다(역자: 4세기부터 황제/귀족의 교회 후원 전통이 이어진 결과로 보인다). 즉 귀족 가문이 특정 교구의 주교직, 나아가 교회 토지 장악을 추구할만한 가치가 생긴 것이다. 또한 주교의 권한이 가장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일부 주교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자신의 교구 내부에 집중되고 국한되었음에도 주교직을 향한 경쟁이 치열했던 건 점차 정치 활동의 지역화가 심화되었음을 보여준다. 4~5세기 무렵의 주교직은 때때로 은퇴 후의 선택지였다. 시도니우스는 로마 제국에서 공직을 수행하다 은퇴할 나이가 되자 고향으로 돌아와 그곳의 주교가 되었고 아폴리나리스도 게르만 왕국에서의 공직 은퇴 후에 주교가 되었다. 하지만 시대가 갈수록 주교직이 커리어의 핵심으로 삼는 이들이 늘어났고 이는 전문적인 성직자 교육의 필요성을 만들었다. 때로는 가문의 차남들이 이 길을 택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온 가족이 성직을 진로로 택하기도 했다. 일례로 투르의 그레고리우스의 가문은 6세기 갈리아 중심부에서 4세대에 걸쳐 7명의 주교를 배출했는데, 그 중 둑스를 지낸 군둘프만이 세속인 출신이고 나머지는 모두 성직에만 전념한 자들이었다. 이러한 흐름의 가장 큰 결과는 로마 제국의 세속 엘리트 문화가 더는 고위층의 상징이 되지 않았단 점이다. 로마 시대에 지어진 시골 빌라들이 버려진 이유는 아마 이 이유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빌라는 여유와 사치를 자랑하는 상징이지만, 상무적인 사회에선 구시대적 상징일뿐이니까 말이다. 육류 소비 문화도 이란 맥락에서 등장했고, 의복도 로마 시대의 토가 차림이 아니라 후기 로마 제국의 장군처럼 입기 시작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변화는 과거처럼 베르길리우스와 그 외 세속 고전을 암송하고, 시와 복잡한 산문을 쓸 줄 아는 것이 더는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시도니우스의 시대까지는 여전히 이것을 필수로 여겻지만 이제는 검술을 연마하거나 성경을 외우는 것이 더 중요한 문화적 자본의 원천이 되었다. 이런 변화는 당대 문헌에서도 꽤나 극적으로 나타나는데 5세기 이후부터 기록의 상당 부분이 기독교적인 주제나 성인전, 설교, 전례 등에 초점이 맞춰졌다(기독교적 열성은 동로마 제국에서도 나타난다). 물론 문예 교육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분명 서유럽의 귀족들은 대체로 9세기 말까지는 어느정도의 문해력을 유지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문해력이나 전통이 유지되었다는 것보다 변화가 있었다는 점이다. 본래 복잡하고 심도있는 교육은 곧 로마 귀족을 특별하게 만드는 도구였다. 하지만 이제 그 엘리트 정체성이 변화하면서, 그 도구 역시 필요 없어진 것이다. 이런 변화들은 대개 점진적으로 일어났다. 150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지 않다. 다만 이탈리아에서는 540년대의 고트 전쟁이라는 재앙으로 인해 변화가 훨씬 더 급격하게 일어났다. 사람들은 이런 변화를 대부분 자각하지 못했고, 작은 변화들에 쉽게 적응했다. 550년까지 혹은 그 이후에도 대부분의 서방의 저술가들이 로마 세계가 끝났다고 생각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또한 과거에 대한 향수를 보이지도 않는다. 도덕이 타락했다는 식의 불평들은 고대 시대 전반에 걸쳐 등장하는 상투적 표현이다. 게다가 문헌이 기독교 중심으로 변하면서 사회적 비판과 도덕적 훈계의 뉘앙스가 크게 늘어났는데 이런 것도 사회 문제에서 기인했다기보다 당대 문학 장르의 특성 때문이다. 또한 당대 대부분의 자료를 기록한 이들은 전통적인 로마 귀족들이고 그들은 여전히 서유럽 대부분 지역에 존재했으며 새로운 출세 루트(군대/교회)를 밟고 성장한 신흥 귀족들, 그리고 새로운 '야만인' 귀족들과 함께 존재했다. 야만인 귀족들은 여전히 로마 귀족 문화를 모방하고 있었지만, 보다시피 그 문화 자체도 변하고 있었다. 귀족 사회는 점점 더 지역화되었으며 서로 멀어지기 시작했다. 결국 650년 무렵에 이르면, 포스트로마 시대의 모든 왕국에서 더이상 자신을 로마인이라 여기는 이가 사라지게 된다. 대신 그들은 스스로를 프랑크인, 비시고트인, 롬바르드인으로 여겼다. 이 시점부터 '로마인'이라는 정체성은 동로마 제국, 랑고바르드인이 점령하지 않은 이탈리아 지역(특히 로마), 그리고 프랑크인의 이주와 영향이 적은 갈리아의 옛 서고트 지역인 아키타니아에만 남게 된다. 다시 말하자면, 사람들은 이 시점에 이르러서야 서방에서 로마 제국이 정말로 끝났음을 인식했고, 로마인이라는 존재를 과거에 속한 것으로 여겨졌다. ---- C.Wickham의 저서 The Inheritance of Rome(2009)에서 발췌 및 번역
-
-
-
-
-
-
-
-
롱소드 대회에서 '한국 검술 고수'가 각성하자 벌어진 일
풀영상 . . . . 아시아권에서 나름 규모있는 대만 롱소드 검술 대회가 있음 여기에 한국 선수들이 출전함 [한국 랭킹 1위 임호관, 2위 흥감독(창술 고수, 선수겸 감독) , 3위 한태풍, 지홍진, 김일권] 여기서 하하호호 하고 열심히 경기를 즐기며 승패 상관없이 국제 무대를 즐겼으면 해피엔딩이었으나... 점점 문제가 드러남 1. 한국 선수들 빠르고 정확한 기술 → 점수 안 줌 2. 느리고 명확하지 않은 대만 선수 기술은 점수 줌 3. 흥감독이 항의했지만 무시당함 연속으로 들어간 ‘즈베이하우’ 공격에도 “면으로 쳤다”면서 점수 박탈 흥감독은 개빡쳐서 한국 선수들한테 "머리만 3연타 때려라" 지시 작전 그대로 했는데 대만의 팔치기에 2점;; 결과적으로 머리 3대 맞고 팔 1번친 선수가 이기는 황당한 상황 결국 흥감독은 마지막 예선 경기에서 폭발 심판이 도저히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선수가 휘청이며 쓰러질 정도의 강한 베기 일본, 필리핀, 대만 선수들 상대로 9:0, 6:0, 7:0 완승 관중, 특히 한국팀과 마찬가지로 편파 탓에 예선 떨어진 인도네시아 선수들 난리남 결국 흥감독은 예선 무실점1위 그 성적을 바탕으로 대만 주최측에 항의함 + 한국 대표 본선 보이콧 선언 결국 심판진 영상 다시 돌려봄 판정오류 인정하며 “Terrible Judging(끔찍한 심판)”라며 인정함 그리고 인도네시아팀 여용준 선수도 점수를 다시 배정받아서 예선 통과하고 본선진출함 지홍진 김일권은 점수를 반영했지만 전패이기에 탈락함. 하지만 대만 친구들의 장난질은 끝나지 않았으니... 1. 예선 1위자 시드반영 안됨 (국제룰 위반) 2. 본선 대진표는 공개추첨인데 주최측이 모두 계산해서 짬 (공평성 위반, 국제룰 위반-웃긴건 작년까지 대만애들이 공개추첨으로 했음) 3. 한국 선수들이 1,2,3위 모두 가져갈까봐 본선 2전에서 한국 선수들 (임호관, 한태풍) 붙여둠 이 문제점들은 차지하고, 그 다음에 어떻게 되었냐? [본선 1경기] 흥감독 vs 작년 챔피언 '존리우' 사실상 결승전 근데... 흥감독은 예선 1위임에도 불구하고 시드 배정 무시;;; 경기 내내 존리우는 흥감독한테 계속 얻어맞고 있음, 경기 끝날 때쯤엔 덜덜 떨면서 시합 중 흥감독의 양손 찌르기(정상 2점) → 1점으로 하향 판정;; , 첫 서든데스: 흥감독이 2점, 존리우 1점 → 동점 처리 (?) 두 번째 서든데스: 흥감독 또 2점, 존리우 1점 → 또 동점 처리 (???) 흥감독 항의했지만 전부 씹힘 흥감독이 머리를 정확히 쾅 쳤는데, 존리우가 한 손 팔로 머리 반격 → 비디오판독 들어감 → “머리를 친 게 아니라 헬멧 옆 패치를 쳤다”는 이유로 흥감독 노포인트 처리 (?????) "마지막 한 번만 더 하자"고 심판이 계속 강요 (??????) 마지막 라운드: 흥감독이 팔을 치고, 존리우도 흥감독 팔을 침 → 심판은 존리우에게만 2점 줌, 흥감독 득점 무시 (.....) 결국 한국 대표단, 대만 대회 다시는 안 간다 선언함 이후, 그래도 임호관 선수는 결국 3위 그래도 한국 팀의 실력은 입증되고 대만에서 태극기 펼치기는 성공. 열받은 흥감독은 "아시아에서 한국이 가장 공정하고 실력 있는 대회 개최하겠다" 선언 한국 팀 덕에 살아난 인도네시아 팀 포함 외국 선수들, “한국 대회 참가하고 싶다”고 밝힘 2026년 아시아 최대 롱소드 대회 기획 중. 2025년 10월 ‘웨폰마스터즈’ 대회 (동서양 무기 격돌) 개최 예정이라고 함. 3줄 요약 1. 대만 롱소드 검술 대회 한국팀 참전 2. 편파판정에도 압도적 실력으로 예선전 1위, 본선 3위 달성 3. 한국에서 2026년에 아시아 최대 롱소드 대회 기획중, 2025년도 10월달에 동서양 이종격검 대회 예정
-
-
-
-
-
-
-
-
-
-
지구 역사상 최강의 육식 동물 12종 (지상)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포식자라 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네, 보통 한국인이라면 시베리아호랑이나 아니면 거대한 북극곰 등을 생각하실 겁니다. 그러나 지구 역사를 통틀어보면 호랑이 정도는 한 입 컷인 강력한 동물이 있었습니다. 바로 진정한 지상 최강의 포식자라 불리는 중생대의 육식공룡이죠. 오늘은 2025년 7월 기준, 가장 강력했던 육식공룡 Top12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랜만에 공룡을 접하셨거나 처음 찍먹하시는 분들도 재밌게 보실 수 있게 최대한 쉬운 용어로 정리했으니 편하게 보시죠. 12위 타르보사우루스 길이: ~10.5m, 체중: ~5.5t 최강의 육식공룡 12위는 아시아의 자존심, 타르보사우루스입니다. 티라노의 아시아 버전이자 가장 가까운 친척입니다. 아시아의 모든 육상 포식자 중 가장 크고 강한 동물이었죠. 덩치가 아프리카코끼리만큼이나 컸으며 머리도 성인 남성을 한 입에 삼킬 만큼 거대했습니다. 덕분에 무는 힘이 바다악어보다도 훨씬 강했으며, 상대의 뼈까지 그대로 부숴버릴수 있었죠. 11위 타우로베나토르 길이: ~11.8m, 체중: ~6.1t 최강의 육식공룡 11위는 황소 사냥꾼, 타우로베나토르입니다. 자, 처음 듣는 이름이 나왔죠? 그냥 스킵 하셔도 됩니다. 원래 얘는 2005년에 발견됐던 중형 사이즈의 육식 공룡이었으나 작년에 엄청 큰 새 화석이 발견되며 순위가 상승했습니다. 듣보잡은 이쯤 보고, 다음으로 넘어갑시다. 10위 알로사우루스 길이: ~11.0(~12.8)m, 체중: ~4.8(~6.5)t 최강의 육식공룡 10위는 쥐라기의 왕, 알로사우루스입니다. 굉장히 유명한 공룡이죠? 여기 나온 종은 한때 다른 공룡이었던 아낙스라는 대형종입니다. 알로사우루스는 앞발이 굉장히 발달한 공룡이었습니다. 일단 발톱부터 사람의 머리보다 컸고, 팔의 힘도 엄청났죠. 이빨 또한 상어처럼 매우 날카로워서 살을 찢는 데 제격이었습니다. 9위 메락세스 길이: ~11.1(~12)m, 체중: 5.6(~7)t 최강의 육식공룡 9위는 메락세스입니다. 네, 메락세스. 소설 '얼음과 불의 노래'에 나오는 용의 이름이죠? 실제로 거기서 이름을 따온 공룡입니다. 메락세스는 앞에서 본 타우로와 마찬가지로 원래 평범한 공룡으로 알려졌으나, 새 화석이 나오며 순식간에 9위까지 올라온 케이스입니다. 또 한 가지 재밌는 점이 있는데, 바로 녀석이 모든 육식 공룡 가운데 가장 오래 살았다는 겁니다. 조사한 결과, 53살에 죽었으며 무려 40대 후반까지도 성장 중이었다네요. 요약하자면 '정말 용처럼 크고 강하며, 수명까지 긴 육식 공룡이었다' 정도가 되겠습니다. 8위 아크로칸토사우루스 길이: ~11.5m, 체중: ~7.5(~8)t 최강의 육식공룡 8위는 아크로칸토사우루스입니다. 서대문자연사박물관 중앙홀에 전시된 공룡이 바로 이 녀석이죠. 아크로칸토는 전형적인 육식공룡의 외형을 하고 있는데요. 잘 보면 녀석만의 특징이 있습니다. 바로 높게 솟은 척추의 돌기죠. 이 돌기는 목에서부터 꼬리까지 이어져 있으며 근육으로 덮여 있었습니다. 덕분에 길이에 비해 몸이 무겁고 완력이 무척 강했습니다. 거기다 무게 중심도 낮고 안정적이었죠. 전형적인 싸움꾼의 체형이었던 셈입니다. 7위 스피노사우루스 길이: ~15.?m, 체중: ~7.4(~9)t 최강의 육식공룡 7위는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스피노사우루스입니다. 네, 티라노도 이기는 스피노가 왜 고작 7위에 있는지 납득이 안 되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우선 이 공룡이 쥬라기 공원 3 이후로 얼마나 바뀌었는지를 보셔야 합니다. 영화 제작 당시에는 화석이 거의 발견되지 않아 실제 모습을 몰랐으나 지금은 10년 전부터 화석이 계속 나와서 어느 정도 모습을 밝혀낸 상태죠. 때문에 현재 스피노는 하마나 악어처럼 강에서 살며 물고기를 잡아먹는 공룡으로 복원됩니다. 아무튼 육상에서의 싸움에는 매우 불리할 것 같은 체형이지만 엄청난 체급 덕에 꽤나 상위권에 올랐습니다. 매우 큰 앞발과 상체를 높게 들 수 있다는 점도 한몫했고 말이죠. 6위 티란노티탄 길이: 11.6m, 체중: 7.4(~8)t 최강의 육식공룡 6위는 폭군 거인, 티란노티탄입니다. 대충 이런 녀석도 있구나 하고 스킵 하셔도 됩니다. 끝까지 보실 분들을 위해 설명을 드리자면, 얘는 앞에서 본 아크로칸토와 거의 같은 크기였으며, 체형도 비슷했죠. 다만 머리가 좀 더 컸습니다. 비슷한 체형인데 머리가 크다는 것은 무는 힘이 더 강력한 동물임을 뜻합니다. 그러나 그 외에는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사실 아크로, 스피노랑 거의 같은 수준이라 보셔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재밌게도 이 녀석은 이름에 '티라노'가 들어가지만, 티라노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공룡입니다. 지루해지니 빠르게 다음 공룡으로 넘어갑시다. 5위 마푸사우루스 길이: ~12.7m, 체중: ~7.8(~8.4)t 최강의 육식공룡 5위는 진짜 최강자, 마푸사우루스입니다. 마찬가지로 생소한 이름이라 그냥 스킵 하고 싶으실 텐데요. 얘는 굉장히 중요한 녀석이라 읽어 보시길 권장 드립니다. 제가 앞서 이 녀석을 진짜 최강자라 말씀드렸는데요. 5위인 녀석을 최강자라 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얘가 무리 생활을 한 공룡이기 때문입니다. 개별로 놓고 봐도 5위에 들 만큼 엄청난 체급과 힘을 자랑하는 공룡이 무리 단위로 움직였던 것이죠. 호랑이 한 마리가 사자 무리를 당해내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4위 카르카로돈토사우루스 길이: ~12.4m, 체중: ~8.2t 최강의 육식공룡 4위는 아프리카의 왕, 카르카로돈토사우루스입니다. 앞에서 본 타우로, 아크로, 메락세스, 티탄, 마푸가 모두 이 녀석의 친척이며, 그 녀석들의 기준점이 되는 게 바로 이 카르카로돈토사우루스죠. 현생 동물로 치면 고양이나 개처럼 과를 대표하는 중요한 공룡인 셈이죠. 카르카로돈토사우루스라는 이름은 상어 이빨 도마뱀이라는 뜻인데요. 이름처럼 녀석은 살을 찢는 이빨과 큰 머리, 거대한 몸집을 가진 공룡입니다. 길이도 체중도 티라노만큼 나갔으며, 무는 힘도 바다악어의 2배에 달할 만큼 강했죠. 재밌게도 카르카로는 앞에서 본 스피노와 공존했는데요. 덩치는 비슷했으나 사는 곳이 달라서 크게 싸우진 않았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다만 둘이 제대로 붙었다면 육상에 적응한 이 녀석 쪽이 더 유리했을 겁니다. 우리나라에서의 인지도는 그리 높지 않지만 세계적으로는 육식 공룡 사천왕 중 하나로 꼽히는 사기 캐라 보시면 되겠습니다. 3위 길이: 12m, 체중: 8.3t 3위가 현재 사라졌습니다. 다음으로 넘어갑시다. 2위 기가노토사우루스 길이: 12.7(~13.5)m, 체중: 8.0~9.0(~10.4)t 최강의 육식공룡 2위는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의 그 녀석, 기가노토사우루스입니다. 두개골의 길이가 1.63m에 달해 모든 육식 공룡 가운데 최장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강력한 무는 힘, 엄청난 속도로 닫히는 턱을 가지고 있었죠. 뿐만 아니라 목뼈가 단단히 결합되어, 물어뜯고 싸우는 육탄전에 강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녀석의 가장 큰 무기는 바로 체급입니다. 거대한 남쪽의 도마뱀이라는 이름처럼 기가노토는 앞에서 본 모든 육식 공룡보다 컸습니다. 가장 완벽한 화석이자 아마도 종의 평균 크기였을 녀석은 몸길이가 무려 12.4~12.7m에 달했고, 체중도 8.5t에 육박했습니다. 심지어 더 큰 녀석도 있었는데요. 아래턱의 끝만 나와 정확한 사이즈를 구하긴 어렵지만 13.5m, 10.4t에 달했다 여겨집니다. 물론 이는 말 그대로 '최대치'입니다. 1위 티라노사우루스 길이: 12.7(~13)m, 체중: 10.5~11.4(~12.3)t 최강의 육식공룡 1위는 명실상부한 공룡의 왕, 티라노사우루스입니다. 여러분들이 다 아시는 티렉스가 바로 이 녀석이죠. 티렉스는 앞서 본 육식 공룡들과 달리 수십 마리가 넘게 발견되었습니다. 때문에 가장 많이 연구된 공룡이며, 표본이 많아 실제 평균 크기와 가장 유사한 값을 얻을 수 있는 종이죠. 비교적 작은 축에 속하는 개체도 8t에 달했으며, 큰 녀석들은 그보다 훨씬 무거웠습니다. 머리 일부나 다리 일부만 발견된 녀석들 중에는 11t 이상인 것도 있다는데요. 다만 이는 앞에서 본 기가노토처럼 '불확실한 최대치'임을 고려해야 합니다. 녀석의 무기는 체급뿐만이 아닙니다. 무는 힘도 역대 최강으로 6t의 무게로 누르는 것과 같았으며, 골반뼈와 다리도 가장 길고 튼튼했죠. 덕분에 다른 육식 공룡들보다 훨씬 빨리 몸을 회전할 수 있었습니다. 엄청나게 단단한 뼈대와 넓은 몸체 덕분에 완력과 맷집 또한 상상을 초월했죠. 심지어 서로 물고 박치기하며 싸우느라 머리에 구멍이 뚫리고, 뼈가 부러져도 살아남을 정도였습니다. 요약하자면... 티렉스는 아직까지도 확고한 육식공룡의 왕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기가노토사우루스와 티라노사우루스의 덩치 차이(둘 다 12.7m 개체)] 여기까지 지구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육식공룡 12종을 살펴봤습니다. 체급부터 무는 힘, 그 외 신체 스펙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 나름대로 최대한 많은 분들이 납득하실 수 있게 순위를 매겼으나, 본 순위에 동의하지 않으시는 분들도 분명 계실 겁니다. 그런 부분은 실제로 싸움을 붙인 것이 아닌지라 어쩔 수 없다 생각합니다. 우선 대충 옛날에 비해 순위가 이렇게 바뀌었고, 이런 공룡들이 새롭게 등장했다 정도로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
10살 하임이의 외로운 죽음 (용인 조카 물고문 학대 살인)
10살 하임이는 활달하고 애교가 많은 아이였다. 또래의 다른 아이들과 전혀 다르지 않은 그런 평범한 초등학교 3학년 여자아이였다 그러나 하임이가 사망하기 3개월 전 이 평범한 아이의 운명을 가르는 일이 발생했다. 바로 부모님의 이혼이었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하임이는 부모님을 떠나 이모 부부에게 맡겨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이모 부부에게 맡겨진 3개월 동안 하임이는 이모 부부에게 차마 글로 다 표현하기도 어려운 끔찍한 학대 속에서 죽어갔다. 하임이의 이모가 무당이었는데 하임이가 귀신에 씌어서 대소변도 못가린다고 퇴마라는 명목 하에 온갖 학대를 자행한 것이었다. 이 끔찍한 사건을 글로써 다 써내리기 힘들지만 하임이가 이모 부부에게 받은 학대의 내용을 그나마 글로 표현하자면 바로 다음과 같다. 1. 학대는 3개월에 걸쳐서 지속적, 반복적으로 진행됨. 2. 하임이를 학대하는 영상을 100여개, 2시간 30분에 걸쳐서 휴대폰으로 녹화함. 3. 파리채, 나뭇가지, 물로 적신 옷뭉치 등으로 수백회에 걸쳐 하임이를 폭행. 4. 하임이에게 매일마다 쓰레기를 버리게 했는데 그 양이 10살 아이가 감당하기엔 너무나 많은 양, CCTV 영상 속의 아이는 그것을 혼자 낑낑 대며 옮기고 있었음. 5. 하임이에게 알몸으로 화장실 청소를 시키는 등 성적 학대도 여러번 자행, 영상 2시간 30분 중 절반 정도 분량에서 하임이가 알몸 상태였음. 6. 수회에 걸쳐 애완견의 대변을 핥고 먹도록 협박, 실제로 하임이는 개의 대변을 삼킴, 이모 부부는 그걸 보고 또 더럽다며 하임이를 조롱. 7. 학대로 생니가 빠졌지만 하임이는 그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스스로 생니를 삼켰음, 실제 위장에서 생니가 발견됨. 8. 사망 당일 갈비뼈가 부러져서 왼팔을 들지 못하는 하임이를 협박해 억지로 오른팔로 잡아 올리게 만듬. 9. 사망 1시간전 영상 속 하임이는 걸을 힘도 없어서 쓰러졌지만 그 와중에도 고개를 돌려 이모 부부의 눈치를 봄. 10. 이모 부부는 실신 상태의 하임이를 욕실로 끌고가 양손을 뒤로 결박하고 욕조에서 약 50분간 물고문을 자행. 11. 결국 하임이는 저항할 힘도 없이 물고문을 받다가 그대로 익사. 이모 부부는 하임이가 숨을 쉬지 않자 119에 신고를 했으나 구급대원이 아이의 상태와 현장 상태를 보고 아동학대로 판단해 경찰에 신고, 이모 부부는 출동한 경찰에 현장에서 바로 체포된다. 그리고 부검 결과 하임이의 직접적 사인은 익사, 간접적 사인은 속발성 쇼크로 밝혀졌다. 법의학자의 말에 따르면 하임이는 사망 당일 이미 수백회에 걸친 폭행으로 혈액이 모세혈관으로 대량으로 빠져나와 속발성 쇼크가 일어난 상태였다고 한다. 즉 물고문을 당하지 않고 병원으로 옮겨졌다고 한들 이미 소생 가능성은 없었다는 뜻이다. 하임이는 사망하기 직전까지 친모를 포함, 그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지 못했다. 오히려 친모는 이모 부부에게 하임이를 폭행할 도구(나뭇가지)도 구해주고 하임이를 정신 차리게 해달라며 학대를 종용하는 메시지를 보냈던 것으로 밝혀졌다. 계속해서 이 학대 사건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었고 검찰은 이모에게 무기징역, 이모부에게 징역 40년, 친모는 징역 5년을 구형하여 기소하였다. 그리고 대법원까지 간 재판은 이모에게 징역 30년 이모부에게 징역 12년 친모에게 징역 2년 이라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판결로 이 사건은 일단락된다. 그저 엄마에게 사랑받고 싶었을 뿐인 평범한 10살 여자아이였던 하임이. 그러나 엄마, 아빠, 이모, 이모부까지 어느 누구도 하임이를 진정으로 사랑해주는 어른은 없었다. 10년의 짧은 생을 마감하기 전 3개월간의 끔찍한 학대, 사망 당일 차가운 욕조 물 속에서 죽어갔을 하임이는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느꼈을까? 단지 모든 어른들의 외면 속에 외롭게 죽어갔을 하임이의 명복을 빌어본다.
당신을 위한 인기글
추천 뉴스
-
-
-
3
‘딸바보’ 이경규, “사위 격하게 반대”… 발언 파장
-
-
5
심수봉 지지 유명 연예인 나왔는데…호재라고 볼수 없는 인물 정체 ‘씁쓸’
지금 뜨는 뉴스
-
-
2
노현정, 현대家 시집가더니… “766억 기업 최대주주 아들”
-
3
’68세’ 임백천, ”컨디션 악화→수척해진 얼굴”… 갑작스런 소식
-
-
5
유재석, 저격글 떴다… “이 계기로 푹 쉬길”
댓글 많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