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야, Author at 디패스트 - 1027 중 172 번째 페이지
이슈야 (24645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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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기에 설치고 다녔던 왜구의 규모
우리가 왜구 하면 딱 떠올리는 것 실제 고려 말 왜구 기간: 1350년부터 약 35년간 침공 횟수: 500차례 이상 무장 수준: 난세의 호족들이 사병 끌고다니며 해적화한거라 사실상 정규군이나 다름 없음 전략전술에도 능숙 삼포왜란 규모 약 4,000명, 100척 임진왜란의 시작 고니시의 제1파 상륙군 18,900명, 약 400~600여척 1380년 진포해전 왜군 규모 약 500척 그리고 얘네들이 하고 다니던 짓 서해안까지 꾸득꾸득 기어들어와서 조운선 다 짤라먹기 전근대 양곡 수송의 거의 대부분은 해로로 충당함, 육로만으로는 공급망 유지 절대 불가능 조운선 짤리면? 당연히 삼남 세금 수취 X 굶주리는 사람들 속출 단체로 유랑민 되고 도시 기능 마비 최고위 지방관도 여럿 죽어나감 賊掠得二三歲女兒, 剃髮剖腹淨洗, 兼奠米酒祭天. 分左右, 張樂羅拜. 祭畢, 掬分其米而食, 飮酒三鍾, 焚其兒, 槍柄忽折. 왜적은 두세 살 정도 되는 여자아이를 납치해다가 머리를 삭발시키고 배를 갈라 쌀을 그 안에 넣어 점을 치고 하늘에 제사를 지냈는데... 술을 석 잔씩 마신 다음 그 아이를 불에 태우니... 《고려사》 권126, 열전 제39 3살짜리 여자애 잡아다 산채로 배 가르고 안에 쌀 넣어서 인신공양 함 倭奴至浙, 慘毒尤甚, 縛嬰兒於竿首, 以沸湯灌之, 觀其啼號, 拍手笑樂 遇孕婦, 則賭其腹中男女, 卽剖之, 勝者飮酒, 屍積如山, 慘不忍睹 절강에 상륙한 일단의 해적들은 젖먹이 아이를 긴 장대 끝에 매달고 펄펄 끓는 물을 끼얹어 어린아이가 비명을 지르며 죽어가는 것을 보고 손뼉을 치며 환호성을 지르는가 하면 임신한 여자를 잡으면 그 태아가 남자인가 여자인가를 내기를 걸고 즉석에서 임신부의 배를 갈라 내기에서 이긴 자에게 술을 실컷 마시게 하며 흥겨워했다. 그들의 술자리에는 임신부의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명사》일본전 갓난애기 잡으면 창끝에 꼬치 만들고 끓는 물 부어 죽이면서 박수치고 임산부 배 갈라서 성별 맞추기 놀이함 기타 특별히 기록할 가치도 없었을 35년 간의 수많은 약탈 + 학살 + 강간 + etc... 그런데 문제는 이게 1페이즈임ㅋㅋㅋㅋ 2페이즈(나하추, 최유)도 있고 다 잡으면 3페이즈(홍건적) 바로 돌입함 마지막으로 기병만 4만 들고있는 최종보스(호바투) 레이드 뛰어야함ㅋㅋㅋㅋㅋㅋㅋ 그저 밸런스 패치 JOAT 좆망겜 "여말선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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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로 제작 됐으면 하는 한국사들
1. 미천왕 - 고구려14대왕 봉상왕은 숙신을 물리친 자신의 형제 달가와 돌고를 역적누명을 씌워 죽임 - 돌고의 아들 을불은 역적의 자식으로 몰려 궁을 나와 도망쳐다님 - 을불은 신분을 숨기고 살다 소금장수를 하면서 삶을 연명함 - 궁에서는 국상 창조리가 패악만 부리는 봉상왕을 더이상 섬길수없다며 왕을 폐할 마음을 먹음 - 창조리는 사람을 시켜 왕가혈통인 을불을 찾아다녔고 결국 찾은뒤 같이 일을 도모해 봉상왕을 몰아내고 왕이 됨 - 이후 낙랑군과 대방군을 한반도에서 몰아내는 업적을 세움 기구한 어린시절을 보내고 왕실혈통임을 숨긴채 살다 왕이 된 인물 2. 하나회 -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한지 겨우 11일째 되던 날 오전 7시반, 권영해 국방부장관을 호출했음 - 김영삼은 권영해장관에게 이렇게 물었음 [군인들은 그만둘때 사표를 제출합니까?] [군인들은 사표 내는 일 없이, 인사명령에 따라 복종하는 각오는 언제든 되어있습니다.] [그라모 됐구마는. 내가 육참총장하고 기무사령관을 오늘 바꿀라캅니다.] - 이 대화를 마친뒤 김영삼은 곧장 육군의 핵심 보직인 육참총장과 기무사령관을 경질했고 정확히 4시간 5분만에 후임을 결정함 - 하나회는 김영삼 대통령의 이런 행보를 전혀 예측하지 못한채 이 사건 이후 그대로 조직이 초토화되는 숙청을 당하기 시작함 - 수도방위사와 특전사 사령관도 전격 해임됐고 이후 장성급 인사에서 하나회인사를 완전히 배제함 - 취임 49일만에 육군내 장성급인사에서 하나회인사를 모두 숙청했고 이후 영관, 위관급까지 싹다 뿌리뽑아버림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긴박했고 대단한 결단이였다 생각하는 하나회 숙청 3. 박자청 - 박자청은 조선 개국공신 황희석 가문의 노비였음 - 이후 내시로 출사한 뒤 조선 건국 후 궁궐 낭장으로 일하고 있었음 - 어린 시절부터 목공이나 도면설계에 소질이 있던 박자청은 각종 건축물 보수공사와 현장에서 두각을 나타냄 - 우연히 이방원의 눈에 띄어 공조전서(국토부장관)로 임명됐고, 각종 건축물 공사를 도맡아 함 - 제릉/건원릉, 도성수축, 청계천조성, 창덕궁건설, 성균관 문묘 건설 등등 - 특히 박자청의 역작이라 불리는 위 사진의 경복궁 안에 있는 경회루는 연못과 3층건물을 짓는 대공사였음에도 8개월만에 완성해버림 - 실력을 인정받은 박자청은 이후 판한성부사(서울시장)까지 올라감 조선 초기 하인의 미천한 신분에서 종1품 고위관직까지 오른 대단한 인물 이사부 - 10대후반 가야 연맹국중 한 곳을 점령하는걸로 역사에 강렬하게 첫 등장함 - 20대초반 실직군주(삼척군)에 임명됐는데 여긴 당시 신라의 최전방, 이미 신라 내에선 그의 능력을 인정했음 - 우산국(울릉도) 정벌을 임명받고, 손쉽게 정벌해버림 - 이후 금관가야까지 정벌해버렸고, 병부령(국방부장관)에 임명됨 - 이후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의 영토싸움에서 이사부의 능력으로 엄청난 승전을 얻음 - 아마 이 시기 이사부는 신라의 수호신급으로 칭송받으며 국가적 영웅이였을거임 (신라의 승전을 기념하기위해 세운 단양적성비 첫 머리에 이사부의 이름이 새겨져있을 정도) - 그러나 이후 진흥왕이 한창 영토전쟁중일때부턴 이사부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음. 즉 너무 영향력이 커진 이사부를 견제하기 위해 아마 파직시키거나 했을거임 - 그리고 한참뒤 진흥왕은 이사부에게 대가야 정벌을 명하고 가야를 쑥대밭으로 만든뒤 가야는 역사속으로 사라짐 - 이후 이사부의 이름은 역사서에서 나오지않음. 아마 대가야를 점령했을때 이사부의 나이가 이미 고령이였으니 천수를 누리다 간게 아닐까 싶음 신라의 수호신이자 한반도 역사상 손꼽히는 정복 전쟁의 신인 이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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