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처럼 하겠다” 정청래, 상임위원장 17석 싹쓸이 선포
6·3 지방선거가 6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 여야는 유리한 선거 구도와 프레임을 짜기 위해 이슈 개발에 한창이다. 그 핵심 이슈 중 하나가 바로 22대 국회 후반기 원 구성이다. 원 구성을 앞두고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책임정치’를 명분으로 국회 17개 상임위원장직 전체를 독식하겠다는 카드를 꺼냈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3월23일 최고위원회에서 “집권여당의 책임과 국민에 대한 도리를 다하기 위해 후반기 상임위 구성과 운영을 100% 민주당이 맡아 책임지도록 하겠다”고 선언했다. 또 그는 “국민의힘 여러분이 좋아하는 미국처럼 우리도 미국식으로 하겠다. 미국은 1석이라도 많은 정당이 모든 상임위원장을 독식한다”며 이른바 ‘미국식 모델’을 전면에 내세웠다.
정 대표의 발언은 이재명 대통령의 ‘느린 입법’ 지적과 ‘대통령 연임제’ 개헌 카드 등과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정치적 수사나 엄포를 넘어 실제 실행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는 단순한 여야 간 주도권 다툼을 넘어, 1987년 민주화 이후 우리 사회가 어렵게 쌓아온 ‘협치와 배분’이라는 숙의민주주의·공화주의적 전통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시도로 비칠 수 있어 우려스럽다. 압도적 다수 의석이라는 ‘힘의 논리’가 견제와 균형, 그리고 법치주의에 기반한 민주공화국의 정신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여의 17개 상임위 독식 움직임
이낙연 전 국무총리는 3월23일 SNS를 통해 “상임위원장을 원내교섭단체 의석 비율로 배분하는 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DJ) 시절에 만든 전통인데 그 전통을 민주당이 지금 깨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정대철 헌정회장도 ‘상임위원장 독식론’을 향해 “권위주의 독재로 가는 것”이라며 “DJ가 살아계셨다면 크게 노하셨을 것”이라고 일갈했다.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을 포함한 범진보진영이 3분의 2에 달하는 의석을 확보했지만, 민주당과 국민의힘 간 총득표율 차이는 겨우 5.5%포인트(50.6%:45.1%)에 불과했다. 이런 결과를 반영하지 않은 채 상임위원장을 독식하겠다는 것은 야당을 선택한 국민의 뜻을 무시하는 처사로 비춰진다.
이런 ‘독식론’의 표면적 명분은 ‘일하는 국회’와 ‘입법 효율성’이다. 야당이 위원장을 맡은 상임위의 법안 통과율이 낮아 민생 입법이 지연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는 몇 가지 중요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첫째, 겉으로는 타당해 보일 수 있지만, 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입법 폭주’를 상시화하고 입법부를 행정부의 거수기로 전락시킬 위험이 있다는 점에서 반(反)공화주의적 발상이다. 이는 사실상 대통령제를 의원내각제처럼 운영하겠다는 선언과도 다름없다. 비효율을 이유로 견제 장치를 제거하는 순간, 국회는 ‘다수파 지배 기관’으로 변질될 수 있다. 입법 효율성을 앞세운 권력 집중은 결국 권력 분립을 통한 견제·균형이라는 공화주의의 핵심 원리를 파괴하게 된다.
둘째, 독식론은 전반기 국회에서 보여준 민주당의 입법 독주를 지속하겠다는 선언으로 읽힐 수 있다. 이는 야당의 견제 기능을 ‘국정 발목잡기’로 규정하고 이를 무력화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그러나 협치 대신 강행 처리를 선택한 ‘여당의 입법 속도전’은 결국 위헌적 입법의 부담으로 되돌아왔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전반기 국회에서 민주당은 정부조직법 개정을 통해 검찰청 폐지와 공소청 신설을 밀어붙였고, 중대범죄수사청법 역시 야당 반대 속에 사실상 단독 처리했다. 이른바 ‘사법 3법’으로 불린 법왜곡죄 신설, 헌법재판소법 개정, 법원조직법 개정안 역시 충분한 합의 없이 처리됐다. 국정조사 금지 대상 논란이 있는 사안까지 본회의에서 강행 처리되면서 ‘입법 속도전’이라는 표현이 ‘졸속 입법’의 풍경이 됐다.
셋째, 독식론의 근거로 제시된 미국식 모델에 대한 해석 역시 문제다. 정청래 대표는 미국식 모델의 핵심인 공화주의적 권력 분립과 연방제의 맥락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일부 요소만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 연방의회는 구조적으로 양원제, 연방제, 필리버스터, 주민자치, 사법 우월주의(judicial supremacy), 사법 적극주의(judicial activism) 등 강력한 견제와 균형 시스템 속에서 상임위원장을 다수당이 맡는다. 이러한 제도적 기반 없는 한국에서 다수당이 상임위원장직까지 독식하겠다는 것은 사실상 ‘일당 독재’로 나아갈 위험을 내포한다.
넷째, 독식론의 본질적 문제는 헌법 질서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맞닿아있다. 민주당이 상임위원장직을 전리품처럼 다루려는 배경에는 입법권력이 사법권력보다 우월하다는 잘못된 신념, 즉 권력 분립 원리를 부정하는 반공화주의적·위헌적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여당의 밀어붙이기 자신감은 입법부가 사법부보다 더 큰 민주적 정당성을 가진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1조 2항을 근거로, 선출권력이 비선출권력보다 우월하다는 논리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권력엔 서열이 분명히 있다”고 언급하며 이러한 인식에 힘을 실었다.
DJ 정신의 본질은 ‘소수에 대한 존중’
그러나 이는 헌법에 대한 중대한 왜곡이다. 헌법 어디에도 입법·행정·사법 간 우열이나 서열을 규정한 조항은 존재하지 않는다. ‘1등 권력’과 ‘3등 권력’을 나누는 발상 자체가 헌법 정신과 배치된다. ‘입법부 우위론’은 일부의 선동일 뿐 헌법적 근거를 가진 개념이 아니다. 삼권 간 갈등이 발생할 경우 해결 기준은 권력의 크기가 아니라 헌법과 법률, 절차다. 권력 서열을 따지는 순간, 민주주의는 법치가 아니라 힘의 논리에 종속된다. 선출권력이 임명권력보다 우월하다는 단순한 도식은 권력 분립과 법치주의의 본질을 훼손하며, 토크빌이 경고한 ‘다수의 폭정’으로 이어질 위험성을 내포한다.
우리 국회가 오랜 관례로 국회의장과 법사위원장을 서로 다른 정당이 나눠 맡아온 것은 다수당의 폭주를 막고, 대화와 타협이라는 의회 민주주의의 본질을 지키기 위한 장치였다. 이를 무시하고 의석수만을 앞세워 상임위원장을 독식하겠다는 것은 숙의민주주의와 공화주의의 기본 원리를 외면한 오만한 발상이다.
독식론은 이러한 위험한 인식이 제도화되는 사례다. 민주당이 이번 선택을 강행한다면 훼손되는 것은 제도뿐만이 아니다. 스스로의 정치적 정체성 역시 흔들릴 수 있다. 민주당은 DJ의 정신, 즉 대화와 타협, 소수에 대한 존중을 계승한다고 강조해 왔다. 김대중 정치의 본질은 권력을 쥐었을 때조차 상대를 배제하지 않는 데 있었다. 민주당이 진정으로 책임정치를 실현하려 한다면, 권력을 더 많이 쥐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부터 고민해야 한다.
원문 https://n.news.naver.com/article/586/0000125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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