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철거됐다는 대한제국 마지막 공공청사…jpg
대한제국 광무개혁 이후에.. 최후 시도로 6조거리(광화문) 대신
명동성당 인근에 신축 정부 청사를 올리기로 결정함.
↑외국인과 많은 엘리트가 모이는 명동의 캐도릭 성당 근처에
대한제국 마지막 공공청사인 ‘농상공부청사‘를 지음..
놀랍게도 설계도가 상세하게 잘 남아있음 전후좌우 측면 내부까지…
↑명동길 끝 수표로가 만나는 지점, 이른바 ‘*터미네이팅 비스타(Terminating Vista)’ 효과를 극적으로 노린 건축물이었음.
명동 성당을 나와 수표교로 향하던 수많은 인파가 저 웅장한 영국식 바로크 건물을 마주했을 거임. 당시 백성들에게는 광무개혁의 결과물이라는 인식이 확실히 박혔을 랜드마크였던 셈.
*길 끝에 랜드마크 건물을 딱 배치해서 시선을 확 사로잡는 도시 설계 기법
↑조선총독부가 보여준 ‘터미네이팅 비스타’ 기법을 그보다 앞서 명동 일대에 구현했던 공공청사임.
당시 인파가 몰리던 명동길 끝자락에서 시각적으로 극적인 효과를 연출하도록 설계됨.
↑하지만 1930년대 중후반, 명동길과 마른내로를 잇는 계획도로(점선으로 표시됨↑)가 잡히면서 철거 위기에 직면함. 이 건물 앞에서 이완용이 피습당하기도 했고 삼일운동의 주요 경로이기도 했으니, 식민당국 입장에선 눈엣가시 같은 존재라 철거 명분이 충분했을 거임. 위 사진 보면 건물 위로 계획도로 난게 보일거임..1936년자료이니 그 전에 계획됐을것..
↑”놀랍게도 실제 철거로 이어지지는 않았음. 1950년 한국전쟁 직후 항공촬영 사진을 보면, 마른내로 계획도로가 농상공부 청사를 절묘하게 빗겨나가며 개설된 것을 확인할 수 있음. 식민당국 조차 차마 밀어버리지 못했을 만큼 당시 이 ‘브리티시 사라센’ 스타일 건축물의 미관과 존재감이 압도적이었던 것으로 보임.”
만약 지금까지 존치되었다면 명동길 끝자락에서 농상공부 청사의 웅장한 클래식 외관과 명동성당의 고딕 양식이 어우러진, 독보적인 근대 역사 경관을 마주했을지도 모름..
“해당 건물은 2006년까지 존속했던 것으로 파악됨.
해방 전까지 구 경성세무서 청사 등으로 활용되며
원형이 상당 부분 변형되긴 했으나, 그 골격만큼은 유지하고 있었음.”
2006년 철거 전 기록을 보면 농상공부 청사의 좌측 윙(Wing) 부분은 원형이 크게 변형된 상태였음. 우측 윙의 경우, 해방 이후 도로 확폭 과정에서 소실된 것으로 추정됨.
결국 이 건물은 2006년 수표로 일대 재개발 계획에 따라 철거됨.
그 자리에는 지상 15층 규모의, 커튼월 빌딩이 들어섬.
↑ 물론 새로 들어선 오피스 빌딩도 준수한 설계지만,
이런 건축물은 강남이나 판교 같은 신시가지 어디에나 있는 범용적인 디자인임.
역사적 맥락이 뚜렷한 장소에 대한제국 최후의
개혁 의지가 담긴 ‘농상공부 청사’를 보존하거나
복원하지 못한 점은 뼈아픈 실책이라 생각함.
만약 현재까지 존치되었다면 명동 카도릭 성당을 나선 인파, 명동의 무수한 쇼핑객들이
길 끝에서 마주하는 근대 건축의 정취를 만끽했을 것임.
명동이라는 역사적 장소의 정체성(Identity)을 완성하는 핵심 퍼즐이었던 셈임.
다행히 복원 가능성은 열려 있음. 내부 상세 도면은 물론 외부 배치도까지 정밀하게 보존되어 있어,
추후 대지 조건만 확보된다면 기술적인 복원 난도는 그리 높지 않을 것으로 사료됨.
출처: 문화재 갤러리 [원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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