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에 이란맘이 많은 이유







1942년에 소련이 이란 북부 해변가 마을에 폴란드 난민 12만명 버리고 감
시베리아 굴라그에서 걸어서 카스피해에서 배 타고 몇 개월을 온 거라서 대부분 기아에 질병투성이였음
이란 정부가 항의했으나 씨알도 안 먹힘
결국 당시 즉위한지 1년도 안됐던 새파란 애송이 왕, 레자 팔레비 샤가 ‘저 사람들 불쌍하니까 구호 해주라‘고 직접 명령함
폴란드 난민들이 상륙한 마을에는 병원 1개, 의사 2명, 간호사 25명이 전부라서 감당이 안되는 상황이었는데, 팔레비가 이란 전국의 의사들이랑 군의관 다 이 마을로 오라고 지시함.
전국에서 불러모은 의료진들로 방역하고 예방접종하고 난민캠프 세워서 분산 수용함.
소련군이 쌩까니까 남부의 영국군 사령부 찾아가서 바짓가랑이 붙들며 ‘제에발 난민들 의료지원 좀 하게 의약품 좀 주셈’ 구걸함
영국과 소련은 나라 반갈죽나서 빵셔틀 취급 당하던 저 애송이 왕이 왜 저렇게 난민들에게 신경 쓰는지 이해하지 못함
난민들중 상당수가 소련 점령지에서 납치 당한 어린이들이었는데, 전부 영양실조에 폐병 걸려있었음.
그래서 자신의 왕실 여름별장 오픈해서 아이들 요양소로 쓰게 함. 이란 귀족들하고 상류층들한테도 어린이들 요양소로 쓰게 저택 좀 기부(징발)하라고 압박함
이란인들은 11만명의 거지떼가 들어왔는데도 크게 반발 안하고 오히려 먹을거랑 입을 것도 주면서 한데 어우러져서 잘 살았음. 폴란드인들은 이란인들의 사업체에서 일을 해서 돈을 벌고, 어린이들은 이란 아이들과 함께 수업 받으면서 학교 다님.
이렇게 피나는 노력을 한 끝에 난민 12만명 중 3,500명이 사망했지만 나머지 10만명은 살아서 전후 폴란드로 돌아감. 몇백명 정도는 이란인들과 결혼해서 귀화했다고 함.
폴란드인들이 돌아갈 때 이란인들이 잘 가라고 버스 창문으로 먹을 것도 넣어주고 길에 꽃도 뿌려주고 나름 훈훈하게 헤어짐.
그래서 폴란드에서는 이때부터 이란을 ‘은인의 나라’라고 인식하고 국가적으로 자주 도와줌. 공산정권 시절에도 건물도 많이 지어주고, 팔레비가 쫒겨나고 새로 생겨난 신정체제 이란과도 좋은 관계를 꾸준히 유지 중임.


테헤란에는 이 때 사망한 폴란드인들의 묘지가 있음.
매년 3월(폴란드 난민들이 처음으로 상륙한 날)이 되면 묘지기들한테 폴란드 대사관으로부터 모든 묘지의 촛불을 켜달라는 요청이 들어온다고 함.
출처: 군사 갤러리 [원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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