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바이러스, 튤립 파괴 바이러스 TBV
-네덜란드 튤립 파동 당시 거래장을 묘사한 그림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 파동Tulip mania은 역사상 최초의 경제 투기 사태로 알려졌던 사건이다[1]. 당시 시장에선 튤립의 색깔, 형태 등에 따라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어올랐고, 가장 뛰어난 숙련공의 수입조차 폭등하는 튤립 가격에 턱없이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고위 정치인부터 빈민에 이르기까지 네덜란드 각층의 사람들이 더 비싼 튤립을 사고팔기 위해 뛰어들었다.
-네덜란드 화가 한스 볼롱기에르가 튤립 파동 시대에 그린 정물화
그 중 특히 줄무늬를 가진 튤립들이 높은 가치를 인정받았다
모든 튤립 중 가장 비쌌던 ‘셈페르 아우구스투스Semper Augustus’ 품종은 붉은 바탕에 흰 줄무늬를 가진 튤립으로, 한 송이당 1만 길더로 암스테르담의 최고급 저택 한 채의 가격과 맞먹는 수준이었다.
이처럼 줄무늬 튤립들은 하나같이 높은 가격대를 형성했기에 많은 육종가들의 목표가 되었다.
그러나 이는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줄무늬 튤립끼리 교배시켜도 대부분 무늬 없는 밋밋한 튤립만 나왔고, 겨우 새로운 품종을 만들어 내어도 오래 지나지 않아 시들고 죽어 버렸기 때문이다.
1634년부터 시작된 이 튤립 가격의 광풍은 채 3년이 되지 않은 1637년 2월, 거짓말같이 사그라들었다.
그와 같이 줄무늬 튤립들도 하나 둘 자취를 감추어 갔다.
-튤립 줄무늬의 원인을 밝혀낸 도로시 케일리
줄무늬 튤립의 의문이 풀린 것은 튤립 광풍 이후 거의 300년이 지난 1928년이었다.
줄무늬 형성의 원인은 유전도, 환경적 원인도 아니었다.
-TBV 입자
그 이유는 바로 튤립 파괴 바이러스(Tulip breaking virus, TBV) 감염으로 인한 현상이었다[2].
-진딧물을 통한 식물바이러스 감염 과정
TBV는 포티바이러스과에 속하는 식물바이러스로, 진딧물을 매개체로 이용한다.
그리고 진딧물이 즙액을 빨아먹기 위해 튤립에 침을 꽂아 넣을때 이를 통해 감염된다.
-TBV에 감염된 튤립의 변화
-TBV가 안토시아닌 합성을 저해해 줄무늬가 형성되는 메커니즘
이후 감염된 꽃잎 내에서 복제를 위해 숙주를 이용하는 과정에서 세포 내 대사가 교란되고, 이에 따라 색소인 안토시아닌 결핍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이 결핍 부위가 줄무늬 병징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었다.[3]
이로써 교배를 통한 줄무늬 튤립의 재배가 극도로 어려운 이유와, 설령 재배되더라도 극도로 수명이 짧은 이유가 밝혀지게 되었다.
줄무늬의 원인이 바이러스라는 것이 알려지자 최대 산지인 네덜란드를 포함한 많은 국가에서는 줄무늬 튤립의 육종 및 판매를 금지했다.
-매개충을 통한 식물바이러스 감염 주기
그럼에도 TBV를 방제하는 것에는 큰 어려움이 따르고 있다.
식물바이러스는 감염 초기 무증상을 보여 진단이 어렵고, 이미 전신에 퍼진 뒤에야 병징이 나타나 치료가 불가능하다. 또한 주로 매개충을 통해 전파되어 해충 방제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기에 다방면에 걸친 방제 방침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4]
-딥러닝 기반으로 바이러스 감염묘를 탐지하는 기술
이러한 이유로 네덜란드에선 연간 900만 유로 이상을 TBV 방제에 지출하고 있다. 그럼에도 전체 튤립 재배지의 80% 가량이 TBV에 감염된 상태로, 피해를 줄이기 위한 딥러닝 기술까지 연구되고 있다.[5]
한국 역시 화훼 검역 기준에 TBV를 명시해 감염묘 수입이 금지되어 있다.
-바이러스 없이 유전적으로 줄무늬를 가지는 품종인 Carnaval de Rio
하지만 줄무늬 튤립의 아름다움을 잊지 못한 육종가들은 바이러스 감염 없이 유전적으로 줄무늬를 나타내는 품종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이들은 기존 줄무늬 튤립과 유사한 외형 및 상대적으로 손쉬운 관리 덕분에 기존 줄무늬 튤립을 대체하며 빠르게 시장에 정착했다.
-‘전통적인’ 줄무늬 튤립인 Absalom(상)과 Mable(하)
그러나 이를 바이러스로 인한 줄무늬보다 아름답지 못하고 인위적이란 이유로 여전히 바이러스 감염 튤립을 만들고 거래하는 소수의 육종가 및 원예가들이 남아 있다.
한때 줄무늬 튤립은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최초의 거품경제 현상을 일으켰던 존재이지만, 현재로서 ‘자연적인’ 줄무늬 튤립은 매우 희귀하며 제한적으로 거래되고 있다.
-튤립 파동 당시 1송이에 1010 플로라(현재 1억원 상당)로 거래된 Zomerschoon(=Somer-Schoon)가 기록된 거래표
-조머스혼 품종을 판매하는 얼마 남지 않은 판매소.
‘튤립 파동의 진정한 생존자’라는 소개 문구가 달려 있다
그 중에서 조머스혼Zomerschoon 튤립은 1620년에 만들어져 현재까지 재배되고 있는 튤립 광풍의 유일한 생존자이다.
이 튤립은 현재 튤립 원예가들 사이에서 가장 선망받는 품종 중 하나이다.
과연 이 튤립은 과거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최후의 유산일까, 아니면 인간의 욕심이 만들어 낸 고통의 굴레를 400년 간 짊어진 존재일까?
*튤립 파동의 경제적 여파는 과대평가되었다는 시각이 있음
*정확한 정보는 참고문헌 참조
1.Delusions, E. P. (2012). Extraordinary Popular Delusions And The Madness Of Crowds.
2.CAYLEY, D.M. (1928), “BREAKING” IN TULIPS. Annals of Applied Biology, 15: 529-539.
3.Wong, A.A., Carrero, G. & Hillen, T. How the tulip breaking virus creates striped tulips. Commun Biol 8, 129 (2025).
4.Gadhave, K. R., Gautam, S., Rasmussen, D. A., & Srinivasan, R. (2020). Aphid Transmission of Potyvirus: The Largest Plant-Infecting RNA Virus Genus. Viruses, 12(7), 773.
5.Polder, G., Van De Westeringh, N., Kool, J., Khan, H. A., Kootstra, G., & Nieuwenhuizen, A. (2019). Automatic detection of tulip breaking virus (TBV) using a deep convolutional neural network. IFAC-PapersOnLine, 52(30), 12-17.
출처: 싱글벙글 지구촌 갤러리 [원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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