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이분법의 오류 . araboja

어제 시계를 좋아하는 사람이랑 잠시 얘기할 기회가 있었다
그 사람이 얘기하길
옷이나 주얼리가 주력인 패션브랜드에서 나오는 시계랑
시계 제조에 뿌리를 둔 시계랑 차별이 심하다고 함
일단 시계에 진심이라도
패션 브랜드라는 꼬리표 때문에 과소평가받는다고 했음

나는 ‘니치’랑 ‘패션’ 향수 논쟁이 떠올랐다
향린이 시절엔 당연히 니치라는 단어가 품질을 보증한다고 믿었음
이제 와서 보니
한국에서는 니치라는 단어 자체가 대중적인 유행이 된거 같다

자크 데리다는 서구 사회가 습관적으로 세상을 두 조각(이분법) 내고,
한쪽은 우월하게, 다른 한쪽은 열등하게 줄 세우는 폭력을 저지른다고 지적했다.
데리다는 이런 구분을 자의적이라고 말함.
힘 있는 쪽이 자기들 유리한 대로 정했다는 뜻.
그리고 이게 반대쪽을 억누르는 폭력이 된다.

향수 업계에서 통용되는 ‘니치’와 ‘패션’도 완벽한 이분법적 구조라고 생각함
이게 문제가 되는 이유는
단순히 나누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무의식적으로 순위를 매긴다는 점이다.

니치라고 해서 원료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전 세계 향수 원료의 대부분이
소수의 거대 향료 회사에 의해 공급되고 제조되기 때문임

디자이너 향수와 패션 향수의 조향사로 비교하는것도 무리임
조향사는 결국 클라이언트가 제시한 의뢰와 돈에 움직이는 기술자이기 때문임

겔랑 같은 하우스는 저가 라인조차 웬만한 니치를 압도하고,
오히려 샤넬이나 디올은 조향사를 전속으로 고용해 브랜드의 비전을 일관되게 유지한다.
이는 데리다가 말한 이분법적 구분이 실재적 가치에 기반하지 않음을 증명한다.

“향수 외에 다른 것을 먼저 만들었는가?”라는 기준을 들이대면,
크리드나 마크 앙뜨완도 패션 브랜드가 되야함
이솝은 패션 취급인데
왜 비슷한 결의 르라보는 니치로 추앙받을까?
로에베나 마르지엘라처럼 패션 브랜드이면서
독창적인 향을 만드는 곳은 어디에 속해야 하는가?

역사를 돌아봐도 마찬가지다.
향수 역사의 주체는 샤넬, 코티, 겔랑 같은 디자이너 하우스들이었다.
이들이 쌓아 올린 업적을 ‘패션’이라는 이름 아래
‘니치’보다 열등한 것으로 치부하는 것은 오만 아닐까..

‘니치’와 ‘패션’
두 단어는 서로 반의어가 아니다.
그래도 니치라는 단어를 쓰고 싶은면
브랜드 전체가 아닌 개별 향수를 평가해야한다고 생각함
커정의 바카라 루쥬는 대중적이지만
오우드 엑뜨는 비교적 니치 향수가 될 수 있다.
디올의 소바쥬는 대중적이지만
에덴록이나 앙브르 뉘는 충분히 니치 스럽다.
하우스에 꼴려하는 향붕이는 하수다.
진정한 고수는 향기에 꼴리는 법
하우스를 단어에 가두려 하는 무의미한 행위 멈춰!
출처: 향수 갤러리 [원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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