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야, Author at 디패스트 - 1027 중 967 번째 페이지
이슈야 (24645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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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팸을 먹으면 발암확률이 18% 증가한다?
햄은 완전 맛있다. 어떻게 그리 맛있는지 모르겠다. 정크푸드라고 하지만 이미 사람들이 이리도 좋아하니 더 이상 쓰레기가 아닌 소중한 음식이지 않을까? 하지만 세상 맛있는 것에 빨간딱지를 붙이는 WHO의 마수는 스팸같은 가공육에도 당연히 예외가 아니었다. WHO는 가공육을 1급 발암물질, 즉 '인체에 암을 일으키는 것이 확실한 것'으로 지정했다. 물론 증거가 확실치 않다는 비판이 있지만, 일단은 권위높은 WHO의 연구에 따르면 대장암을 일으키는 원인 중 하나가 된다고 한다. 한편, 영국 암연구소에서는 대장암의 21%가 가공육 또는 적색육에 의해 나타난다고 보았으니, 전문가들에겐 꽤나 위험하게 받아들여지는 셈이다. WHO는 하루에 가공육을 50g 이상 꾸준히 섭취하면 (대충 위 짤만큼이 50g 이하라고 한다) 발암 확률이 18% 증가한다는 결론을 내놓았다. 이럴 수가, 스팸은 가장 작은 캔이 200g인데, 이제라도 4등분해서 먹는 슬픈 노력을 해야 할까? 근데 우선 18% 증가한다는 문장이 무슨 의미인지부터 정확히 알아야 한다. 흔히 언론에서는 그냥 생략한 것인지 몰라도 이 점을 명확히 말하지 않아 공포가 확산된다. 이것은 18%p 증가한다는 것이 아니라(예: 10%->28%) 1.18배 증가한다는 뜻이다. (예: 10%->11.8%) 그러니까, 사실 생각한 것처럼(?) 무시무시한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호오 그러나 인생에서 발암확률이 1.18배 증가한다는 건 뭔가 미묘하지만 무시하긴 힘든 그런 느낌이고, 많이 먹을수록 발암확률이 높아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리하여 영국, 호주 등도 국민들에게 가공육 섭취를 50g 미만으로 줄이라고 권고하고 있다. (*물론 저것보다 많이 먹으니까 줄이라고 하는 거다) 대강 의료계와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입장은 '뭐 일단 암에 걸릴 확률이 높아질 수 있고 실제로 가공육을 자주 먹으면 고혈압, 혈관 문제 등 다른 이유 때문에라도 건강에 나쁠 수도 있으니 제발 네 건강을 위해서 육류를 너무 많이 먹지 말고 채소와 과일 위주의 건강한 식습관으로 쳐먹을래?'다. 그치만 그렇게만 먹을 거면 오래 살 필요가 없는 걸? 그래그래 고기=발암물질이라고 낙인찍지 마셈 어느 정도의 육류 섭취도 건강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야 맞긴 하고, 우리도 아예 고기 먹지 말란 건 아닌데... 너무 많이 먹으면 암 걸리니까 적당히 먹으라 이거지 전세계적으로 매년 34000명 정도가 과도한 가공육 섭취에 의해 암에 걸려 사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아니 생각해 보니까 화나네 상식적으로 고기 먹어서 암 걸리는 사람이 많겠냐 맨날 술먹고 담배 펴서 걸리는 사람이 많겠냐 담배땜에 암걸려 죽는 사람은 매년 100만이야 인류 암 중 30~40%가 담배로 인해 생기고 후두암 80% 폐암 86%가 담배 때문에 생긴다는데 가공육 저울에 대 볼 시간에 담배나 끊으라그래 씨발 축산업계는 '발암 물질' 논란에 대응하여, 고기를 덜 섭취하는 것은 실질적인 암 예방방법이 아니며 알코올, 담배, 체중 등의 문제에 우선적으로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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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와 청나라의 뜻이 서로 정확히 맞아떨어졌던 순간
상이 칙서 앞으로 나아가, 한 번 절하고 세 번 머리를 조아리는[一拜三叩頭] 예를 행하고 이어 칙서를 받았는데, 그 칙서에 이르기를, "황제는 조선 국왕(朝鮮國王) 이휘(李諱)에게 칙유(勅諭)하노라. (생략) 하였고, 다음으로 섭정왕(도르곤)의 서신을 열어보니, 그 글에 이르기를, "황숙부(皇叔父)인 섭정왕은 조선 국왕에게 글로써 위문합니다. 갑자기 세자의 부음을 듣고 깊이 놀라고 애도하였습니다. 세자는 은혜롭고 온화하고 돈후하고 정성스러워 문채가 금옥(金玉) 같았으므로, 국왕을 도와 덕화를 펴서 우리 왕실의 훌륭한 제후가 되기를 방금 기약했는데, 어쩌면 그리도 하늘이 착한 사람을 보우하지 않고 갑자기 중도에서 꺾어버린단 말입니까. 국왕 부자(父子)의 지극한 정리를 생각하면 어찌 그 슬픔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마는, 국왕께서는 높은 연세에 질병까지 있는 터라, 지나치게 슬퍼하시는 것이 더욱 심신을 상하기 쉬우니, 의당 음식 거처를 때에 맞게 하고 의약(醫藥)으로 몸을 보호하며 힘써 너그러이 풀어버릴 것을 생각하여 영원한 복을 받으셔야 합니다." (생략) 하여 정명수가 좌우 신하들을 물리치기를 청하므로, 상이 시신(侍臣)들을 합외(閤外)168) 에 나가 있도록 하니, 환관 두 사람만 남아서 상을 모시었다. 이때 사관(史官)이 합외에서 바라보니, 통역관이 상과 칙사 사이를 세 차례 왕복하였다. 한참 뒤에 상이 시신들을 들어오라고 명하였고, 칙사는 밖으로 나갔다. 상이 명하여 도승지 김광욱(金光煜)을 앞으로 가까이 나아오게 하고 이르기를, "칙사가 섭정왕의 뜻으로 전언(傳言)하기를 ‘동방의 인심이 좋지 않은데, 이런 때에 만일 어린 원손을 후사로 삼는다면 인심이 위의(危疑)하여 불안할 듯합니다.’ 하기에 내가 사실대로 고하였더니, 네 사신들이 다 기뻐하여 말하기를 ‘국왕에게 이미 정해진 계책이 있으니 동방의 행복입니다.’고 했다." 하였다. <인조 23년 6월 4일> 정확히 표현하면 당시 청의 실권자였던 섭정왕 도르곤과 인조의 뜻이 맞아떨어진 순간. 도르곤이 소현세자를 조선으로 영구 귀국 시켜주었는데, 귀국한 소현세자가 얼마후 급사하자 도르곤이 사신과 정명수를 보내서 위로의 뜻을 표함. 저렇게 위로의 뜻과 슬퍼하느라 몸 상할까 걱정 된다 위로해줘서 고맙다 이런 의례적인 말들 서로 주고받고 하다가 청나라 사신과 정명수가 조선 신하들 모두 나가게 해달라해서 내관 두 사람만 인조 곁에 남고 조선 신하들은 다 편젼 문 밖으로 나가고, 사관도 거기 동석 못 하고 문 밖에서 바라보기만 함. 그리고 인조와 청나라 사신은 본격적인 대화를 나눔. 도르곤 지금 정세가 혼란스러운데 여기서 조선 왕위를 어린 원손이 물려받고 조선이 혼란스러워지면 여러모로 골치 아프지 않겠음? 어린 원손 말고 우리와 면식이 있는 봉림대군 어떰? 인조 내가 생각해온 바가 님 뜻과 같음ㅎㅎㅎ 도르곤 굿굿굿 ㅎㅎㅎ 사실 도르곤이 소현세자 청나라에 데리고 있을 때도 은근히 공을 (?) 들이기도 했음. 소현세자 잘 대해준 편이기도 하고 산해관 전투에서 이자성하고 싸울 때도 소현세자를 불렀는데, 소현세자가 와서 자리에 앉기도 전에 도르곤이 말에 올라타며 세자는 전쟁터로 따라오라고 명하며 소현세자와 조선 관리들을 전쟁터에 데리고 감. 그리고 소현세자와 호종했던 조선 관리들은 이 전투에서 팔기군이 30분 만에 이자성의 6만~20만 병사들을 녹여버리는 장면을 봄 (궁시공격 2~3회로 기선 제압한 뒤에 기병 돌격해서 녹여버리기) 도르곤 세자야. 청나라 힘 잘 봤지? 조선에 귀국해서 왕이 되어도 대청에 개길 생각 따위는 하지를 말라고. 대략 이런 퍼포먼스 였던거 같은데, 이렇게 나름 공을 들인 소현세자가 돌려보내자마자 죽어버리니 도르곤 입장에서는 "아 기껏 공 들여놨더니 귀찮게하네 ㅅㅂ" 뭐 이런 생각 아니었나 싶음. 그래서 저렇게 사신 보내서 인조의 의향을 떠봤는데 인조가 생각하고 있던 것과 도르곤의 의향이 서로 딱 맞아떨어진 순간. 봉림 대군(鳳林大君)이 상소하기를, "삼가 생각하건대, 신은 어리석고 불초하여 뭐 하나 쳐줄 만한 것도 없는 위인이 집에 있으면서 봉록만 먹는지라, 항상 그 과실이 위로 성명(聖明)의 걱정을 끼치게 될까 두려워했습니다. 그런데 꿈속에서도 생각하지 않게 천만 뜻밖으로 갑자기 신을 세자의 자리에 올리시는 전교를 내리시니, 신은 가슴을 치도록 망극하여 몸둘 곳이 없어서 밤낮을 쉬지 않고 놀라 부르짖어 울다가, 이렇게 궁박한 정황을 하소연할 곳이 없었으므로, 부득이 만 번 죽음을 무릅쓰고 번거롭게 말씀을 드립니다. 삼가 생각건대, 선 세자가 (소현세자) 오랫동안 동궁에 있다가 이제 막 서거하였고, 원손의 칭호는 온 나라 사람이 우러러 아는 바입니다. (중략) 하니, 상이 답하기를, "상소를 살펴보고 너의 간절한 마음을 잘 알았다. 너는 총명하고 효성스럽고 우애 있으며 국량이 좁은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특별히 ‘맏형이 죽으면 그 다음 아우가 계통을 잇는다.[兄亡弟及]’는 예를 썼으니, 너는 사양하지 말고 더욱 효제(孝悌)의 도리를 닦아 형의 자식을 마치 너의 자식처럼 보살피거라." 하였다. <인조 23년 6월 4일> 그리고 이때 봉림대군은 자신의 세자 책봉을 거둬달라고 하고 있었음. 그리고 인조는 이런 봉림대군에게 소현세자와 강빈의 자식들을 너의 자식처럼 보살피라고 말함. 하지만 그 뒤의 일은 대부분 다 아는대로 강빈을 억지스러운 방법으로 죽이고 얼마 뒤에 소현세자와 강빈의 아들이자 자신의 손자가 되는 아이들도 다 귀양 보냄. 그리고 인조는 원손 (훗날의 현종) 을 세손으로 봉하는 등 모든 승계 작업을 나름대로 다 마치고나서 3달도 안 되어서 죽음. 1. 원래는 처음 말 그대로 소현의 아이들도 잘 보살피라는 뜻이었다가 이런 짐은 자기가 더 처리하고 가야 된다는 생각에 저렇게 했던건지. 2. 니가 왕이 되면 조카들을 니 자식처럼 보살펴줘야 한다. 조카들이 그때까지 남아있다면 말이지만ㅎㅎㅎ 봉림대군에게 저 말을 했을 때 무슨 뜻이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저렇게 승계 작업 다 마치고 죽은거 보면 아마 전자 쪽이 아니었을까 싶긴 함. 물론 저 강빈 제거 과정에서 무리수를 많이 둬서 효종 정통성 문제가 생기긴 했지만, 광해군 정신병자 만들어놓고 마지막 유언도 양심 터진 병신 이었던 선조의 승계에 비하면 선녀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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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알려지거나 오해받는 역사 상식들
1. 문화대혁명 관련 문화대혁명은 중국 역사상 최대 반달리즘으로 ‘중국에서 모든 영역을 후퇴시켰다’고 평가 받기 때문에 간혹 관련 영역과 거리가 먼 것도 문화대혁명으로 ‘소실’되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문화대혁명은 이전의 봉건적 문화를 극단적으로 파괴하려는 운동이기 때문에 중국 현대 기록 등을 모조리 파괴하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현대사 기록은 멀쩡이 있는 경우가 많은 것. 봉건적 작태나 정파 싸움과 거리가 있는 분야는 밈으로 쓰이듯이 모든 것이 파괴되지 않았다. 밈적 용례로 문화대혁명을 쓸 수 있으나, 온갖 분야에 갖다 붙이기에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 ※ 이와 관련된 오해로서 간자체도 문화대혁명의 산물이라 알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간자체는 그냥 한자가 너무 어려워 문맹률을 낮추기 어렵기 때문에 한자를 간소화하기 위한 운동에 불과하다. 한자의 간략화 시도는 한국과 일본에서도 있었다. 간화를 먼저 시작한 것은 대만이었다. 2. 천안문 6.4 항쟁=자유민주주의 운동? 천안문 6.4 항쟁은 한국의 민주화운동과 같이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운동이라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사회주의 체제 내에서의 민주적 개혁’을 추구한 운동에 가깝다. 굳이 따지면 당시 시위대가 원하던 사회상은 제1세계 민주주의보다,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국가의 사회상과 더 가까웠던 것 3. 고구려의 국호 고구려의 국호는 동명성왕 때부터 ‘고구려’였으며, 장수왕대 이후 ‘고려’로 개칭된 것으로 본다. 왕건의 고려는 이를 계승한 것. 간혹 ‘옛날의 고려다’해서 ‘고구려’라고 알고 있는 경우도 있는데, 옛날의 고려는 '구고려(句高麗)’라 했다. 4. Korea 음모론 일제강점기, 한국의 영문을 의도적으로 K로 배치해 J보다 뒤쳐지게 했다는 것은 유명한 '잘못된' 상식이다. 당시 한반도를 일컫는 대표적인 지명은 Korea와 Chosun이었다. 일본식으로 읽어도 'Choseon'으로 C로 시작한다. 5. 기미년 3월 1일 정오? 기미독립선언문은 '삼일절 노래' 가사와 달리 정오가 아니라 오후 3~4시에 발표되었다. 6. 김정호 옥사설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는 옥사하지 않았다. 추가적인 지도 제작을 하다 병환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며, 대동여지도는 불타지 않았다. 해당 이야기는 일제시대 교과서 등에 추가된 가공의 프로파간다다. 7. 당파로 골병드는 조선? 조선 후기 당쟁으로 사망한 사람은 50년간 79명으로 타국의 정변에 비해 안정적인 상태에서 정권 교체가 활발히 일어났다. 조선시대 당파 싸움이 나라를 좀먹었다는 주장은 식민사관의 대표적인 영향. 부정적인 영향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그 정도가 과장되어 알려졌다. 8. 오히려 평균 이상인 나폴레옹 나폴레옹 키는 167이고 당대 평균 키에 비해 오히려 큰 편이었다. (당시 남성 평균키 164cm) 9. 출처를 알 수 없는 명언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을 최초로 한 사람은 불분명 하다. 신채호, 처칠설 등이 있지만 공식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문건이나 기록은 없다. 다만, 박은식의 ‘한국통사’에 따르면 비슷하게 해석될 수 있는 문구는 존재하지만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 10. 아버지보다 유명한 아들 최영 장군의 ‘황금 보기를 돌 같이 하라’는 본인의 격언이 아니라 최영 장군 아버지의 격언이다. 최영장군이 유명하다보니 와전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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