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이백천, 오늘 ‘사망’… 빈소 마련
이백천, 세상 떠나
향년 93세의 일기로 별세
무교동 음악감상실 ‘쎄시봉’

한국 포크 음악의 산증인으로 불린 원로 대중음악평론가 이백천이 세상을 떠났다. 이백천은 21일 향년 93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유족으로는 딸 이소연 전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장과 사위 정준영 한국방송통신대 교수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대학교병원장례식장 4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오는 23일 오전 7시 진행된다. 1933년 황해도에서 태어난 고인은 1960~70년대 한국 포크 음악이 자리 잡는 과정에서 PD와 기획자, 연출자로 활동하며 수많은 음악인들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 음악계에서는 그를 ‘통기타 군단의 담임선생님’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음악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서울 중앙중학교 밴드부 활동을 통해서였다. 이후 진해 해군 군악대와 미8군 악단 ‘에이톤’에서 활동하며 음악적 경험을 쌓았다.
지난 1964년에는 TBC(동양방송)에 PD로 입사하면서 방송과 대중음악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였다. 60년 넘게 통기타와 포크 음악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당시 젊은 음악인들이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데 힘을 보탠 것.

특히 이백천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바로 무교동 음악감상실 ‘쎄시봉’이다. 음반을 구하기 위해 쎄시봉을 찾았다가 DJ 박스를 맡게 된 그는 ‘대학생의 밤’ 등을 진행하며 음악인들과 가까이 교류했고 ‘똘강’이라는 애칭으로도 불렸다. 조영남, 윤형주, 송창식, 이장희, 박상규 등 당시 한국 대중음악을 대표했던 가수들과 인연을 맺은 것도 이 시기였다.

지난 1969년 쎄시봉이 문을 닫은 뒤에도 음악인들을 위한 활동은 계속됐다. 이듬해인 지난 1970년에는 명동 YWCA에 ‘청개구리집’을 마련해 김민기, 양희은, 서유석 등 포크 가수들이 설 수 있는 무대를 직접 기획했다.
가수로 무대에 선 것은 아니었지만 이백천은 음악인들을 발굴하고 무대를 만들며 한국 포크 음악의 성장 과정에서 독특한 역할을 담당했다. 수많은 음악인들의 활동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때로는 조언하며 한국 포크 음악의 한 시대를 함께했던 이백천의 별세에 음악계의 애도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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