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평이 넘은 산속에서 혼자 집짓고 살고있는 왕년의 국민 여배우

1981년 미스 MBC 선발대회를 거쳐 방송계에 입문한 김혜정은 스물셋이라는 이른 나이에 시골 아낙인 ‘복길 엄마’ 역으로 낙점됐다.

뽀얗던 서울 아가씨의 피부를 감추기 위해 손톱 밑까지 시커먼 파운데이션을 밀어 넣고 손가락에 붕대를 감아가며 악착같이 시골 여인의 삶을 체화해 냈다.
그 피나는 몰입은 20여 년간 시청자들의 눈물과 웃음을 자아내며 그를 독보적인 ‘국민 며느리’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드라마가 막을 내린 뒤 찾아온 공백은 잔인할 만큼 가혹했다. 20년 넘게 한 인물의 희로애락에 온 신경을 쏟아부었던 대가는 참담한 정체성 혼란이었다.
거울을 바라볼 때마다 자신은 온데간데없고 늙고 지친 복길 엄마의 얼굴만 덩그러니 서 있는 듯한 착각에 휩싸였다. 몸을 달팽이처럼 웅크린 채 밤새 눈물을 쏟아냈고, 껍데기만 남은 박제 인형이 된 것 같은 극심한 공허감과 우울증은 호흡곤란을 동반한 공황장애로 이어졌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안식처는 역설적이게도 ‘전원일기’의 마지막 숨결이 머물렀던 운길산 자락의 마을이었다.
쌍봉슈퍼와 빨래터, 노인들이 장기를 두던 그늘 나무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그곳에서 그는 상처 입은 자아를 서서히 치유해 나가기 시작했다.
드라마 세트장을 쏙 빼닮은 산속 외딴집에서 보일러도 없이 직접 장작을 패 불을 지피고, 닭과 거위를 돌보며 자연 그대로의 삶을 온몸으로 살아냈다.
뱀을 피하기 위해 두꺼운 각반을 동여매고 억척스럽게 흙을 파며 정원을 가꾸는 동안 고관절을 다쳐 2년간 쪼그려 앉지도 못할 만큼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끝없는 제초 작업과 전지 작업으로 손가락 마디마디가 굵어지고 풀물이 들어 남들 앞에서는 테이블 밑으로 손을 감춰야 할 정도였지만, 흙을 일구고 이웃 농가와 품앗이를 나누는 땀방울 속에서 그는 차츰 마음의 평온을 회복해 갔다.
치열했던 치유의 여정은 학문적 도전으로 이어졌다. 김혜정은 2년 전부터 상담심리학 박사 과정에 진학해 서울의 대학 강의실을 오가며 내년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학과 동기들과 교수들을 통틀어 최연장자이지만 배움에 대한 열정은 누구보다 뜨겁다. 과거 텅 비어버렸던 영혼의 껍데기를 학문과 봉사로 채워 넣었다는 그는, 자신이 겪었던 혹독한 우울증과 상실의 아픔을 거울삼아 이제는 세상의 또 다른 상처 입은 이들을 보듬는 따뜻한 상담가로서 새로운 인생 2막을 시작하고 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