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대통령, 안타까운 비보…눈물 흘릴 소식

이재명 대통령이 정치적 스승이자 원로로 여겨온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을 떠나보냈다. 고(故) 이해찬 수석부의장은 25일 베트남 호찌민에서 심근경색으로 별세했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고인에 대한 애도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고인과 인연이 각별했던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은 오늘 민주주의 역사의 큰 스승을 잃었다”라며 고인의 역할과 상징성을 언급했다.
25일 이재명 대통령은 저녁 자신의 페이스북에 추모 글을 올려 “비통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라고 밝혔다. 그는 이해찬 수석부의장에 대해 “격동의 현대사 속에서 민주주의 가치를 지키고 확장하기 위해 일생을 바치신 분”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이 대통령은 “(이 수석부의장은)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새로운 국가 비전을 제시해 수도권과 지역이 함께 성장하는 토대를 마련했고 통일을 향한 확고한 신념으로 평화의 길을 모색하셨다”라고 적었다. 그러면서 “함께 이루고자 했던 꿈을 완성하지 못한 채 떠나보내야 하는 아쉬움은 말로 다할 수 없다”라고 애도했다.
이 수석부의장은 1952년 충남 청양에서 태어나 서울대 재학 시절 학생운동에 참여하며 반독재 투쟁과 통일운동에 나섰다. 민청학련 사건과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뒤에는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사회과학서점 ‘광장’을 운영했다. 이해찬 수석부의장은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 탄생 과정에 깊이 관여하며 ‘킹메이커’로 불렸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끌던 평민당에 합류한 그는 1988년 13대 총선에서 당시 최연소인 36세로 국회에 입성했다. 이후 18대 총선 불출마를 제외하고 지역구 선거에 7차례 출마해 모두 당선되는 기염을 토했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1998년 교육부 장관을 맡아 고교 평준화 확대와 학력고사 폐지, 수능 도입 등 굵직한 교육 개혁을 주도했다. 이 시기 추진된 정책은 교육을 넘어 노동시장과 인적자본 형성에까지 영향을 미치며 ‘이해찬 세대’라는 표현을 남겼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2004년 국무총리에 발탁돼 재임 당시 행정중심복합도시 구상과 세종시 설계에 관여하며 국가균형발전의 한 축을 세웠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6년 당에서 탈당 후 무소속으로 출마해 세종특별자치시 지역구 의원으로 당선되며 정치적 존재감을 재확인하기도 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는 민주화 운동 시절부터 30년 넘게 인연을 이어왔다. 이 수석부의장과 문 전 대통령은 참여정부에서 각각 국무총리와 대통령 비서실장을 맡아 국정을 함께했다. 또한 문 전 대통령이 대선 후보로 나섰던 19대 대선에서 이 수석부의장은 선거대책위원장으로 활동하며 문재인 정부의 출범을 도왔다.

이재명 대통령과의 인연 역시 각별했다. 2021년 대선 당시 이재명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상임고문을 맡았고, 2024년 총선에서는 상임공동선대위원장으로 나섰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인 지난해 10월에는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에 임명돼 평화·통일 의제를 상징하는 인물로 활동했다. 이 대통령은 민주당 대표 시절이던 2022년 고인의 회고록 출판기념회에서 “제가 가장 존경하는 어른”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날 대통령실 참모진도 잇따라 추모 메시지를 냈다.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은 “대한민국의 민주화와 민주적 국민정당 건설이라는 거대한 꿈에 평생을 바친 분”이라며 “그 길 자체가 역사였다”고 밝혔다. 홍익표 청와대 정무수석도 “민주주의의 횃불을 들고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제시해 준 나침반 같은 분”이라고 평가했다.
이해찬 수석부의장의 장례는 사회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민주당에 따르면 장례는 5일장으로 결정됐으며 고인은 26일 밤 베트남을 떠나 27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뒤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안치된다. 장례위원회 구성과 세부 절차는 조승래 당 사무총장 주도로 준비 중이다. 민주당 지도부는 정쟁적 발언을 자제하며 고인을 추모하는 데 집중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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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짜이밍쎼쎼
나라를 작살내놓고 그냥 죽으면 안되지! 죄값은 받고 죽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