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 결국 ‘인정’ 고개 숙였다…전례 없는 상황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이 15일 이임식에서 국민의 사법 불신에 대해 사과의 뜻을 밝히며 사법부가 개혁의 대상이 아닌 동반자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법원 본관에서 열린 이임식에서 천 처장은 “사법부가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한 것은 국회 및 정부와의 상호 존중 속에서 국민을 위한 개혁을 준비하는 데 우리 스스로 부족했던 결과”라고 입을 열었다.
이어 그는 “저의 불민함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고, 그로 인해 사법부를 신뢰하지 못하게 된 모든 분들께 깊이 사과드린다”라고 말했다. 현직 법원행정처장이 공식 석상에서 ‘사법 불신’에 대해 고개를 숙인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로 평가된다.
그럼에도 천 처장은 사법부의 개혁 참여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사법부가 개혁 논의에서 배제돼선 안 된다”라며 “이는 사법제도 개편의 역사적 전례와도 맞지 않고 사법 서비스의 이용자인 시민들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특히 1987년 헌법 체제 이후 사법개혁 과정에서 사법부가 배제된 적이 없었다는 점을 들어 최근 논의 구도에 대한 유감을 에둘러 표현했다.
천 처장은 또 사법개혁의 방향에 대해서도 견해를 밝혔다. 그는 “사법개혁은 무한 소송의 기회를 여는 것이 아니라 사실심 단심제처럼 신속하고 실질적인 분쟁 해결을 바라는 시민들의 염원에 부응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는 최근 논의되고 있는 법원제도 개편안 중 일부가 실질적 사법 접근권을 후퇴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천 처장은 “사법부 구성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달라”며 국회와 정부를 향해 메시지를 전했다.

이임식에서 천 처장은 향후 사법개혁을 위한 제도적 기반과 협력 구조 마련이 필요하다는 점도 언급했다. 그는 “새로 구성될 법원행정처가 국회와의 긴밀한 소통 속에서 사법개혁의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법원행정처는 대법원장의 지휘 아래 전국 법원의 인사·예산 등 사법 행정 전반을 총괄하는 조직이다. 현직 대법관이 맡는 자리로, 재임 중에는 재판 업무를 하지 않는다.
천 처장은 이날을 끝으로 2년간의 법원행정처장 임기를 마치고 대법관으로 복귀한다. 그의 후임으로는 박영재 대법관이 임명됐으며 16일부터 공식 임기를 시작한다. 박 신임 처장 체제 아래에서 사법부가 어떤 방식으로 개혁 논의에 참여하고 국민 신뢰 회복에 나설지 주목된다.
이번 이임식은 단순한 직위 이임을 넘어 사법부 수장의 입을 통해 국민 신뢰 회복과 제도 개편 방향을 둘러싼 사법부 내부 기조가 공개적으로 드러났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정치권에서 논의 중인 각종 사법개혁안에 대해 사법부가 향후 어떤 방식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제도 논의에 참여할지 주목되는 가운데 천 처장의 발언은 새로운 법원행정처의 출발점에 사실상 기준선을 제시한 것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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