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특검’ 양평 공무원, 죽음 직전 마지막 카톡엔…

지난 17일 오전 경기도 양평군 양평읍의 한 아파트. ‘출입금지-수사중’이라 적힌 테이프가 문에 붙어 있다. 앞엔 지난 10일 발송됐다는 송장이 붙은 과일 박스가 일주일이 지난 이날까지 남아 있었다. 아파트 경비원은 “경찰 수사가 안 끝났다고 하니 유족도 뭘 건드릴 수 없어 안 오는 것 같다”고 했다.
이곳에 살던 이는 33년 전 9급 지방공무원으로 공직에 발을 들였다. 고속 승진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묵묵히 맡은 일을 했고, 주변에선 “청렴도는 특A급”이라고 했다. 지난해 7월 면장(5급 공무원)이 됐을 땐 화환 대신 쌀을 받아 불우이웃에 기부했다. 주민들은 수줍음이 많아 혼기를 놓친 이 “착한 노총각” 면장에게 중매를 섰다. 그는 정년 퇴임 후엔 농사를 지으며 여생을 보내고 싶다고 했다.
그랬던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단월면장이었던 정모씨. 57세였다. 그는 지난 10일 오전 11시14분쯤 자택 화장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전날 오후 6시52분, 자신이 선임한 변호사에게 이런 카톡을 보내고 17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던 때다.

” 변호사님만 믿고 가겠습니다. 끝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이 은혜 죽어서도 갚도록 하겠습니다. “
그는 왜 은혜를 ‘죽어서도’ 갚겠다 했을까.
이팩트(이것이 팩트다) 취재팀은 그의 죽음에 의문을 품고 정씨의 지인들을 만나 증언을 수집했다. 특검팀 수사에 대한 정씨 육성 녹취가 존재한다는 것도 확인했다. 정씨를 조사했던 특검팀, 그중에서도 ‘9팀’ 구성원 14명의 면면을 살폈고, 이들 중 5명에게 접촉을 시도했다.
취재 과정에서 지난 7월 발생한 다른 자살 사건에도 특검팀 관계자가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주장도 접했다. 취재팀은 수사를 받다 목숨을 끊는 이들이 왜 계속 나오는지 분석하기 위해 20년간 검찰·경찰 조사 후 자살한 이들에 대한 통계도 살폈다.
정씨는 지난 2일 오전 10시 김건희 특검팀(특별검사 민중기)에 변호인 없이 홀로 출석했다. 2016년 양평군에서 개발부담금 업무를 담당했다는 이유로 김건희 여사 가족기업 ‘ESI&D(이에스아이엔디)’ 양평 공흥지구 개발 특혜 의혹과 관련해 피의자 신분으로 불려갔고, 12시간 넘게 조사를 받은 뒤 3일 새벽 1시쯤 귀가했다. 그 뒤 이런 메모를 작성했다.
” 사실을 말해도 거짓이라고 한다. 수사관의 강압에 전혀 기억도 없는 진술을 했다. 잘못도 없는데 계속 회유하고 지목하란다. (중략) 진술서 내용도 임의로 작성해서 답을 강요했다. 이렇게 치욕을 당하고 삶도 귀찮다. 자괴감이 든다. 세상을 등지고 싶다. “

그는 메모에서 ‘팀장님’과 ‘수사관’ 등 2명도 지목했다. 전체 메모에선 강압(4회), 강요(2회), 무시(2회), 치욕·수모·멸시(각 1회) 등의 단어가 11번이나 나왔다.
괴로워하던 그는 8일 변호인을 선임했다. 9일엔 변호인과 카톡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 특검 조사를 받은 지 8일 만이었다.
” 충격이었습니다. (끝까지 잘 부탁한다는) 이런 문자를 한 다음날… (세상을 등질지) 전혀 생각 못했거든요. “
정씨가 사망 이틀 전 변호인으로 선임한 박경호 변호사는 지난 16일 대전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취재팀을 만나 이렇게 토로했다. 그는 정씨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를 풀려면 고인이 남긴, 아직 공개되지 않은 유서를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 마지막 카톡 메시지를 나눈 9일 오후 6시57분부터 극단적 선택을 하기까지 어떤 변화, 심적 변화가 있었을 겁니다. 그게 꼭 밝혀져야 합니다. “
21장 분량의 유서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정씨 사망 사건을 수사해온 양평경찰서는 애초에 유족에게 유서 원본이 아닌 촬영본 일부만 보여줬고, 유족은 유서가 정치 쟁점화될 것을 꺼리고 있다는 전언이다.
정씨 죽음을 둘러싼 의문을 풀 열쇠는 더 있다. 특검팀 조사 기록이다. 그러나 특검팀은 강압 수사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신문 조서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조사 당시 정씨가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영상 녹화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 정치가 뭔지, 애먼 공직자가 희생양이 됐습니다. “
지난 14일 오전 양평군청에서 열린 영결식. 이곳에서 만난 최모(67)씨는 탄식했다. 정씨와 가까웠다는 최씨는 다음날인 15일 고인과 만나기로 약속했었기에 더 황망해했다.
” 마지막 본 게 특검 조사(2일) 전인 지난달 30일이었어요. 도로변 제초 작업을 감독하고 있던데 원래 마른 몸이 대나무마냥 삐쩍 마른 거예요. 특검에서 ‘3일 후에 들어와’ 해 놓고 연장을 서너 번 했나 봐요. 약속된 날짜에 부르지 않으니 이거대로 신경 쓰이는 거지. 공무원들은 새가슴이에요. “















댓글0